대한미앙(9) 금자훈향
훈로는 향을 피우는 기구로, 늦어도 전국시대에 이미 등장하였으며, 한대에 비교적 유행하였다. 재질은 도자기, 동, 자기 등으로, 형식은 뚜껑이 있는 콩 모양, 박산형, 행로형, 정형, 새 모양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박산로는 한대에 유행한 향로 양식이지만, 당시에는 아직 이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한대의 출토 유물에서 보면, 그 '자명'에는 모두 '훈로'라고만 적혀 있었다. '박산로'라는 이름은 외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나뭇잎 모양의 연기가 정교하게 조각된 산 모양의 뚜껑에서 천천히 퍼져 나와, 구름 무늬, 인물 및 새와 짐승이 장식된 독특한 형태의 로체를 감싸며, 군산이 아련하고 여러 짐승이 떠다니는 효과를 형성하여, 당시 사람들의 해상 선산에 대한 상상에 부합하였다. 또한 전설에 따르면 전국시대 조무령왕과 진소왕이 산에서 신과 바둑을 두는 기이한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바둑을 두는 산에서 불로장생의 신선을 연상하여, 이와 같은 선산 모양의 훈로를 '박산로'라고 불렀다. 또 다른 설은 생산지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봉래 서쪽의 산동 노중(현재의 자박시 박산구)은 전 지역이 산으로, 평탄한 곳이 거의 없으며, 중국 고대 도자기와 요업의 중요한 생산지이자 박산로의 원산지이다.
훈로에서 사용하는 훈향은 주로 모향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훈초 또는 혜초라고도 한다. 또한 고량강, 신이 등의 약재를 모향과 혼합하여 훈소하는 방법도 있다. 한대에는 다양한 명귀 향료도 차례로 중국에 전해졌다. 무제 때 수마트라 원산의 용뇌향이 남해를 통해 배로 수입되었고, 서역과 통하면서 소아시아, 시리아 등지에서 원산인 소합향도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전해졌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중원 지역에서는 이미 디티, 미미, 두나, 백부자, 훈육, 울금, 운교 등 다양한 서양 향료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박산로는 많은 고인의 시부에 등장하였다. 남량 태자, '소명문선'의 주편인 소통은 '동박산향로부'라는 시를 썼다. '유혜대이암은, 역예상이어승선. 사숭산지롱종, 상등림지간면. 어시청연사한, 석광예경. 취휘이저, 난고미병. 염증내요, 필분외양. 사경운지정색, 약경성지서광.' 서한 종실 대신, 유명한 경학자 유향은 '박산로명'에서 '가차왕기, 참암약산. 상관태화, 승이동반. 중유란기, 주화청연.'이라고 하였다.
👁기수인물박산로(서한) 도1-2
통고 32.3센티미터
1968년 만성 중산정왕 유승의 아내 두완의 묘에서 출토
이 박산로의 바닥에는 한 기수 역사가 있다. 로뚜껑은 상하 두 층으로 나뉘며, 상층에는 산과 구름이 주조되어 있고, 산 사이에는 호랑이와 곰이 출몰하며, 인물과 짐승이 싸우고 사람이 소수레를 모는 장면이 있다. 하층에는 용, 호랑이, 주작, 낙타, 그리고 초목, 구름 등의 문양이 주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