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일제 강제 동원 역사관.
국립 일제 강제 동원 역사관.
개관 시간 :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입장은 오후 5시까지 )
휴관일 : 매주 월,1월1일,설날 및 추석 당일
일제 강제 동원은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침략 전쟁을 벌이기 위해 실행한 인적,물적 동원 및 자금 통제를 말 합니다. 강제 동원은 당시 일제가 지배한 모든 지역에서 자행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강제동원은 일제가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후, 국가 총 동원법을 만들면서 자행 되었습니다.
국가 총 동원법은 일본,본토와 식민지,점령지 등 모든 지배 지역이 있는 인력과 물자와 자금을 전쟁에 총동원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의회 동의 없이도 일제정부에 위임할 수 있도록 한 전시 통제 기본법 입니다.
제국주의는 군사적으로 남의 나라를 정복 하여 정치,경제를 좌우할 힘을 가지려는 침략주의적 국가 정책 입니다.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한민족 문화 말살과 효율 적인 전쟁 동원을 위해 조선인과 일본인이 하나' 라는 내선일체 사상을 내세우며, 조선인을 일왕에게 충성 하도록 만들기 위해 황국 신민화 정책을 추진 했습니다.
일왕숭배, 일장기 계양, 기미가요 제창, 궁성요배,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조선인의 의식, 역사를 말살하는 교육을 시행,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만을 사용하게 했다. 1939년에는 조선 민사령을 제정, 창씨개멍을 강요하여 조선인의 전통적인 성씨 제도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1942년 인구는 26,361,401명 입니다.
조선인 강제 동원 : 7,827,328명
노무 동원 : 7,554,764명
군무원 동원 : 63,285명
군인 동원 : 209,297명
일제는 한반도에서도 국민징용, 할당모집, 관알선을 통해 보국대. 봉사대.근로단.청년단.작업반.정신대 등 명칭 으로 인력을 동원 하였습니다.
보국대를 환용한 한반도내 노무동원은 연인원 5백만 명에 달할 정도로 다수를 차지했다.
도내 동원자 대부분은 2-3회 정도 동원되는 것이 예사 있는데 관습적으로 행해저와던 '부역' 또는 당시의 '근로봉사'의 의무로 위장되어 자신의 노동력이 착취당한다는 성각도 하지 못한 채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제 국가 권력은 '위안소 설치'와 운영은 물론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과 수송,성노예 생활 강요 등 '위안소'제도의 전 과정에 관여 하였습니다. 학계에서는 피해자 수가 최대 30만명으로 추정 하고 있습니다.
일제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 동안 노무자, 군인,군무원,일본군 '위안부' 등의 이름으로 조선인을 전장으로 내몰았습니다.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모른 채 한반도를 비롯해 일본군이 침략한 모든 곳에 동원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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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강제 동원과 위안부 피해를 당한 역사를 배웠습니다.
조선인 분들이 군인,군무원,노무원,등으로 강제 동원 되었습니다.
일제의 위안소 설치°운영과 위안부 동원에 일본군 성노예는 전쟁 범죄 입니다.
국가의 자원에 약탈과 수탈이 만연 하였고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하였습니다.
일제 식민지의 역사를 왜곡 하지 않고 진실을 통해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야 합니다.
피해를 보상 하고 역사에 사실 그대로 기록 하며 잘못을 반복 하지 않도록 반성과 교육을 해야 합니다.
일제 식민지 강제 동원과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아픔과 고통을 기억 합니다.
빼았긴 나라를 되찾는 국권 회복에 누구나 독립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 강제 노역과 성노예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이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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